Random.GG

영상아내

기억의 영상: 그녀는 내 아내였다

누군가 내 뇌에 영상을 심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가 내 아내라고 말하는 영상을.

"당신은 기억상실증 환자입니다. 이 영상을 보세요. 이 여자가 당신의 아내입니다."

의사라는 남자가 반복해서 말했다. 하얀 방,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 그리고 내 앞에 놓인 태블릿에서 재생되는 영상. 화면 속 여자는 웃고 있었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채 바닷가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그녀의 미소는 쓸쓸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제 아내라고요? 저는...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의사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6년 전이었습니다. 당신은 사고 후 모든 것을 잊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상을 보았다. 푸른 원피스의 여자는 언제나 웃었고, 나는 언제나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열흘째 되는 날, 영상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여보,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날 기억해 봐."

그 목소리. 영상 속에서 그녀가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 들렸다. 백색 소음처럼 숨겨져 있던 그 목소리가.

밤이 되자 꿈에서 그녀를 만났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채 바닷가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의 얼굴은 흐려졌고, 바람에 지워지는 모래 조각상처럼 형체가 사라져 갔다.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도망쳐.'

다음 날, 나는 태블릿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척하며 영상을 정지시켰다. 화면에 균열이 생기자 의사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나는 태블릿 뒷면을 열었다. 그곳에는 작은 메모리 카드가 있었다. 품에 숨겼다.

밤중에 화장실에서 그 카드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표면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자진 참여자 #247'.

다음 날 아침, 태블릿이 아닌 대형 스크린으로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다른 여자였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다른 여자. 그리고 의사는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여자가 당신의 아내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요, 어제는 푸른 원피스였습니다. 오늘은 노란색이군요."

알람이 울렸다. 붉은 빛이 방 안을 채웠다. 문이 열리고 무장한 경비원들이 들어왔다. 의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설정이 필요합니다."

나를 붙잡아 주사를 놓으려는 순간, 나는 입 속에 숨겨둔 메모리 카드를 삼켰다. 몸이 차가워지고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나는 확신했다. 내 아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푸른 원피스도, 노란 원피스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곳을 탈출하면, 그녀를 찾아낼 것이다. 내 진짜 기억에 심어진 영상 속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