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화장품: 감춰지지 않는 흔적
그녀가 남긴 화장품들은 마치 유물처럼 욕실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버리지 못한 지 정확히 43일째였다.
작은 파우더 컴팩트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향기가 났다. 살구빛 파우더가 반쯤 남아있었고, 그 위에는 그녀의 지문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내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따라 그리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꼼꼼하게 화장을 했는지 떠올렸다. "화장은 마법이야, 내 진짜 얼굴은 너만 알아." 그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했다. 며칠째 제대로 씻지 않은 머리카락, 잠 못 이룬 눈 밑의 다크서클. 아이러니하게도 내 옆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고급 스킨케어 제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같이 완벽한 피부를 약속하는 제품들. 그녀는 그것들을 써서 매일 아침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빨간 립스틱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자 그녀의 입술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그대로. 문득 그녀가 이 립스틱을 바르고 다른 남자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밤, 그녀는 나에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그녀가 두고 간 메이크업 리무버 티슈, 마스카라, 블러셔... 모두 그녀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듯 내 삶에서 사라졌지만, 정작 이 화장품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아이섀도 팔레트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좋아했던 모브 컬러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파여 있었다. 살짝 손가락을 대보니 부드러운 가루가 묻어났다. 문득 깨달았다. 그녀의 화장품은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을 감추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자아를 창조하는 수단이었다.
하나씩 화장품을 쓰레기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집어 든 것은 그녀가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던 작은 향수병이었다. 그녀는 이것만큼은 절대 잊지 않았다. 향수를 한 번 뿌리자 그녀의 향기가 욕실을 가득 채웠다.
쓰레기봉투를 묶으면서 깨달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화장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을 그렸듯이, 나도 이제 그녀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봉투를 버리고 돌아온 욕실은 이상하리만큼 넓어 보였다.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마주했다. 이제 그녀의 화장품 없이, 그녀가 남긴 흔적 없이, 오롯이 내 모습만 비춰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 이별도 결국은 마스크를 벗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