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드라마: 내일의 주인공은 나
시작은 늘 같았다. 새벽 3시 27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하는 순간이었다. 김현우는 침대 옆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자기계발서 다섯 권과 형광펜, 그리고 빼곡히 적힌 계획표를 바라보았다. 그의 방은 마치 개인 도서관과 작전 본부를 합쳐놓은 듯했다. 벽에는 '하루 1% 성장', '계획하고, 실천하고, 기록하라'와 같은 문구들이 포스트잇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오늘은 꼭 달라질 거야." 그는 매일 아침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현우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았다. 출퇴근길에는 오디오북을 1.5배속으로 들었고, 점심시간에는 영어 단어를 외웠으며, 화장실에서조차 TED 강연을 시청했다. 그의 존재 이유는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그의 방 한켠에 놓인, 절대 열지 않는 서랍 속에는 미완성 희곡들이 가득했다.
그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회사에서 돌아온 현우는 새로 산 '인생을 바꾸는 습관의 힘'을 펼쳤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소리가 자꾸만 그의 주의를 빼앗았다.
"연기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현실적이어야 해."
그럼에도 TV 속 배우들의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그를 사로잡았다. 특히 주인공의 눈물이 맺힌 장면에서 현우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TV 화면이 깜빡이더니 주인공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당신은 언제까지 관객으로만 남을 건가요?"
현우는 깜짝 놀라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환청이었을까? 그는 흔들리는 손으로 TV를 껐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서랍을 열었다. 6년 동안 쓴 희곡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현우는 처음으로 알람보다 늦게 일어났다. 밤새 희곡을 고치느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퀘퀘한 커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고, 바닥에는 구겨진 종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자기계발서들은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두 달 후, 현우의 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기계발서 대신 희곡책과 연극 이론서가 책장을 채웠다. 벽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인물의 내적 갈등', '3막 구조의 클라이맥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 앞에는 지역 극단의 신입 단원 모집 공고가 놓여 있었다.
현우는 거울을 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디션 대사를 연습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자기계발서에서 찾아헤매던 '진정한 나'였다. 현우가 몇 년간 쌓아온 자기계발의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그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고 있었다.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모든 드라마는 변화하는 주인공이 필요하다." 현우는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며 중얼거렸다. 오늘,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인생 드라마에서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