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자매: 회사가 갈라놓은 피
유리벽 너머로 그녀가 보였다. 내 자매, 아니, 이제는 김 상무님이라 불러야 할 그 사람. 동일한 DNA를 가졌지만, 우리 사이엔 투명하지만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회사의 조직도가 만든 벽.
"이번 프로젝트는 김 대리가 맡아주세요. 능력이 검증됐으니까요."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언니의 목소리는 여느 임원과 다를 바 없이 차갑고 공식적이었다. 누구도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었다. 3년 전,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던 날 맺은.
"혈연이 회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소문은 없어야 해. 네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해, 윤아." 언니는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형광등 아래 반짝이는 언니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바라보며 묻고 싶었다. 정말 내 실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동생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내 이름이 회사 전체 메일에 언급됐고, 분기 우수사원으로 선정됐다. 사무실 한쪽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을 때, 언니는 그저 멀리서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자부심과 질투의 비율이 궁금했다.
그날 밤, 회식 자리에서 선배 하나가 술기운에 말했다.
"김 상무님이 네 뒤에서 얼마나 널 방어해줬는지 알아? 이사님들이 네 프로젝트 예산 줄이려고 할 때마다 자기 평판 걸고 싸웠다더라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창밖 빗방울을 보며 생각했다. 동료애였을까, 자매애였을까. 회사라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걸까.
다음 날, 언니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간, 우리 둘만 남은 층. 투명 유리벽 안에서 그녀는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상무님, 잠시 시간 되세요?"
언니는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 불빛 아래, 그녀의 눈가에 서린 피로를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아픈 날 내 이마에 손을 얹던 그 눈빛 그대로였다.
"프로젝트 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요."
그녀의 책상 위에는 우리 가족사진이 없었다. 대신 회사 상패들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언니는 모든 것을 희생했다. 자매라는 정체성까지도.
언니가 손짓했다. "들어와, 문 닫고."
유리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회사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윤아야." 그 한마디에 3년간의 거리가 무너졌다. 회사와 가족 사이,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투명한 유리방 안에서는, 잠시나마 우리는 그저 자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