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남사친: 웃음 뒤에 숨겨진 진실
"모든 남사친은 결국 고백한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내 옆에는 10년째 함께하는 재밌는 남사친 도윤이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연애사를 들어주고, 술에 취해 부축하며, 서로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그런 사이였다. 도윤이가 나에게 감정을 품을 리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도윤이와 한강공원에서 치맥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노을이 강물 위로 주황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고, 맥주 캔이 열리는 소리가 '츠슥' 하고 밤공기를 가르며 청량함을 더했다.
"야, 이거 봐. 어제 데이트했던 그 남자가 보낸 카톡." 내가 휴대폰을 내밀자 도윤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흠... 뭔가 미심쩍은데? 이런 말 건네는 남자는 보통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 않아."
도윤이의 날카로운 분석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그랬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남자마다 뭔가 트집을 잡았다. 너무 바빠 보인다, 문자 답장이 늦다, 너랑 안 어울린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그 남자 안돼."
"너 정말 재밌는 남사친이야. 내 연애 인생에 그렇게 관심 많을 필요 없어."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도윤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냥... 네가 상처받는 게 싫어서 그래."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말을 돌렸다.
"근데 내일 우리 과 미팅 있다며? 너도 나오지?"
도윤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안 갈 거야. 공부해야 돼."
"뭐야, 너 요즘 이상해. 재밌는 남사친 타이틀 반납해?"
갑자기 도윤이가 맥주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평소의 장난기가 사라졌다.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나... 사실..."
바로 그때,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엄마였다.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 도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다가가자 그는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뭐라고 하려고 했어?" 내가 물었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다음 주에 내 생일파티 올 수 있냐고."
뭔가 이상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도윤이의 룸메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윤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간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룸메이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했다.
"자기가 직접 말하라고 했는데... 도윤이 너 좋아한대. 오래전부터. 근데 네가 항상 다른 남자 얘기만 하니까 더 이상 '재밌는 남사친'으로 있기 힘들대."
그날 밤, 나는 도윤이와 나눴던 모든 대화, 그가 분석했던 모든 남자들, 그리고 항상 내 곁에 있어준 시간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가장 진실된 사랑은 항상 웃음 뒤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눈앞에서, 재밌는 남사친이라는 가면을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