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드라마: 시청률의 배신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발표할 때, 나는 이미 웃고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상, 최고의 미니시리즈 부문. 내가 쓴 '그림자의 사랑'으로 받는 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드라마는 시청률 3%의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축하합니다, 김준호 작가님!" 무대 위로 올라가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손에 쥔 트로피는 차갑고 묵직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나는 감사 인사를 시작했다. "먼저, 저를 믿어준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때였다. 객석 맨 뒤에서 누군가 일어났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는 내가 절대 이 자리에서 볼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최원석. 내가 표절한 원작 시나리오의 진짜 작가.
마이크를 붙잡은 내 손이 떨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관객들의 얼굴은 갑자기 희미해졌다.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최원석은 여전히 서서 나를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나는 말을 더듬었다. 사회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최원석이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일 년 전,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명 작가의 시나리오를 훔쳤다. 아름다운 대사, 완벽한 구성, 깊이 있는 캐릭터 - 모두 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가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적어도 업계 소문은 그랬다.
객석을 향한 목소리가 마침내 들려왔다. "김준호 씨의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최원석의 목소리였다. 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반전은 정말 놀라웠어요. 그걸 쓸 당시 저도 굉장히 놀랐거든요."
객석의 웅성거림. 카메라 플래시가 빠르게 터졌다. 누군가 "무슨 말이에요?"라고 외쳤다. 최원석은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내게 죽음의 종소리처럼 들렸다.
"제가 쓴 원작을 김준호 씨가 '참고'하셨나 봅니다. 원고 파일의 메타데이터까지 완벽하게 가지고 있어요. 발표 안 한 결말까지 똑같거든요."
시상식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나는 트로피를 떨어뜨렸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객석은 마치 파도처럼 일렁였다. 내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한 생각만 맴돌았다. '이 장면, 그림자의 사랑 마지막 회와 똑같아. 주인공의 추락. 배신의 순간. 재밌는 드라마는 결국 현실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