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썸타기: 우리 사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첫눈에 반했다는 건 아름다운 거짓말이다. 나는 서준우를 처음 봤을 때 그저 '아, 저 사람 나랑 취향이 비슷하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회사 복도에서 마주친 그가 들고 있던 책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것이었을 뿐이다.
"혹시 이 작가 다른 작품도 읽어보셨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 재밌는, 아주 재밌는 썸타기.
우리는 종종 점심을 같이 먹었다. 커피숍에서 만남을 가졌다. 퇴근 후 책방을 함께 돌아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냥 친구'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특히 다른 동료들이 우리를 보며 키득거릴 때면 더욱 그랬다.
"우리 그냥 친한 거예요." 내 말에 서준우는 항상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을 나눠 쓰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그의 향수 냄새와 비에 젖은 아스팔트 향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우리 사이에는 겨우 5센티미터의 간격이 있었고, 그 공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득 차 있었다.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 그가 물었다.
"응, 왜?"
"좋아하는 재즈 바가 있는데, 같이 가볼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도 그냥 친구 사이의 만남일까? 아니면 드디어 이 모호한 관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일까?
재즈 바의 은은한 조명 아래, 그는 내 눈을 오래 바라봤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선을 넘을까 말까, 우리는 계속 그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이거 재밌지 않아?" 갑자기 그가 물었다.
"뭐가?"
"이렇게... 썸타는 거."
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 이건 썸이었다.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던 것.
"솔직히 말하면, 난 이런 관계가 좋아." 그가 계속했다. "기대와 설렘,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움. 더 진전되면 이런 감정들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즐기는 건 이 모호함이었다. 확정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설렘, 불확실성이 주는 흥분.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이 게임 속에 머물게 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우리는 바를 나섰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이것도 우리 게임의 일부였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어제 정말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자."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여러 가능성이 내 하루를 설레게 했다.
이것이 썸타기의 매력일까?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서 오는 즐거움. 확정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자유로움. 우리는 아직도 이 경계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정말 재밌다. 이 춤이 언제 끝날지, 혹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며 미소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