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남사친: 달콤한 경계선
삼 년째 발렌타인데이마다 내 책상 위에 놓이는 수제 초콜릿은 언제나 포장지 없이 맨얼굴을 드러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갈하게 도열한 다섯 개의 초콜릿 트뤼플, 각각의 표면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지문처럼 개성 있는 그 균열은 민재의 손길이 남긴 흔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또 만들었네." 나는 무심한 척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함과 은은한 럼주 향. 내 취향을 그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우정이 십 년을 넘어가는 동안, 민재는 이웃집에서 대학 동기로, 그리고 지금은 같은 회사 동료가 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남사친'이었다.
"맛있어?" 커피 두 잔을 들고 내 책상 앞에 선 민재가 물었다. 그의 검지에 초콜릿을 만들다 생긴 작은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늘 그렇듯." 나는 무심한 척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무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올해는 조금 특별해." 그가 내게 건넨 커피잔 아래에는 접힌 쪽지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펼쳐 보았다.
'초콜릿 다섯 개. 각각의 트뤼플에 넣은 것들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설렘, 대학 시험기간 밤새워 함께 공부했던 밤, 네가 이별 후 울던 날 내가 참았던 고백, 지난 크리스마스에 네 손을 잡았을 때의 떨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오늘 저녁 일곱 시, 한강공원에서 알려줄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로 돌아가고 없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열 번의 발렌타인데이 동안 그가 만들어준 초콜릿들, 나는 그것을 단순한 우정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달콤함 속에 녹아있던 마음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손에 쥔 마지막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오랜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어가는 이 경계, 마치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듯 우리의 관계도 서서히 다른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입에 넣은 초콜릿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친구라는 단단한 껍질 아래 숨겨져 있던 그의 마음이, 이제 와서 내게도 보이기 시작한 이유를. 그리고 오늘 밤 일곱 시, 한강공원에서 맛보게 될 우리 관계의 새로운 맛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