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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썸타기

출근길의 썸타기: 9호선의 비밀

매일 아침 8시 27분, 9호선 전동차의 세 번째 칸에서 우리의 썸은 시작되었다. 사실 '썸'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과 나누는 시선의 교환일 뿐이었으니까.

그는 항상 내가 타는 역에서 두 정거장 전에 탔다. 검은색 정장에 네이비 타이를 매치한 단정한 모습이었다. 가방은 항상 오른손에 들고, 왼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출근 러시아워의 혼잡함 속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서 있었다. 우연일까, 의도일까.

출근길의 지루함을 깨뜨리는 작은 게임이 되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0.8초 동안만 응시한 후 시선을 돌렸다. 길면 의도가 드러나고, 짧으면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는 내가 시선을 돌리면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희미하게,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3주째 되던 수요일, 그가 처음으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의 향수 냄새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시더우드와 베르가못이 섞인 향. 우리는 어깨를 스치며 30분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내가 일어나려 할 때, 그의 손이 살짝 내 손등에 닿았다. 실수인 척했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다음 날, 그는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썸이란 게 그런 것일까. 시작도 제대로 하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것. 열흘째 되던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가 타던 역에서 내렸다. 적어도 왜 안 나타났는지 알고 싶었다.

역 근처 회사들을 둘러보다 한 빌딩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로비에 걸린 대형 액자 속에 그가 있었다. '이달의 우수 직원 - 고(故) 김준혁'. 사진 아래 작은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날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날짜였다.

몸이 얼어붙었다. 로비에 있던 경비원이 다가왔다. "저기...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사람... 언제 돌아가셨나요?" 경비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작년에요. 출근길 9호선 사고로... 세 번째 칸에 있었대요."

그날 이후 나는 다른 칸을 이용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세 번째 칸을 지나칠 때면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 옆에 그가 서 있는 것 같다. 같은 검은 정장, 같은 네이비 타이, 같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린 우리의 썸은, 어쩌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8시 27분, 9호선의 세 번째 칸은 누군가의 출근길 썸타기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