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남사친: 그가 마법사였다
"너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우리 더 이상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거야." 민혁의 말에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10년지기 남사친의 농담쯤으로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날 밤, 내 창문 앞에 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민혁은 내 인생의 상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친구이자, 대학에서도 같은 과를 선택한 편안한 존재. 그의 어깨에 기대 영화를 볼 때도, 시험 기간에 머리를 맞대고 공부할 때도, 우리 사이에 낀 건 달콤한 우정뿐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제 보여줄게, 내가 누군지." 창문 밖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중에 떠 있는 민혁의 손끝에서 푸른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은은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났다.
"장난 그만 쳐, 민혁아." 내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내 방 안의 모든 물건이 공중에 떠올랐다. 책상 위의 교과서들, 침대 옆 조명, 화장대 위의 작은 소품들까지. 그리고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 오래도록 숨겨져 있던, 익숙하지만 낯선 기운이 온 방 안을 감쌌다.
"내가 마법사야. 정확히는 21세기에 남은 마지막 마법사 혈통 중 하나지." 민혁의 목소리에는 진중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네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우연은 사실 우연이 아니었어."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갑자기 멈춘 폭우, 위험했던 교통사고에서의 기적적인 회피, 언제나 내 기분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그의 능력. 10년간 '운이 좋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실은 그의 마법이었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곧 전쟁이 시작돼. 마법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민혁이 내 앞에 발을 내리며 속삭였다. "그리고 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야."
그의 손이 내 손목을 감쌌을 때, 피부 아래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손목의 피부가 빛나기 시작했고, 오래된 문양이 서서히 드러났다. 내 몸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네가 알아야 할 진실이 있어." 민혁의 눈동자가 은빛으로 빛났다. "우리는 그냥 남사친이 아니야. 너와 나는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운명공동체야. 그리고 넌..."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가 뭔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넌 마지막 판타지 세계의 열쇠를 가진 사람이야. 그리고 내가 10년 동안 네 옆에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의 마지막 말은 갑자기 터진 창문 폭발음에 묻혔다. 검은 그림자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민혁은 나를 품에 안은 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느꼈다. 남사친이라 생각했던 소년의 품속에서, 이제 내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판타지의 세계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