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드라마: 현실과 꿈 사이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서서히 낯선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동자 색이, 그다음에는 입술 모양이,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윤곽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변화처럼 익숙했다.
"김현우 씨,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셨나요?" 탁자 건너편에 앉은 의사는 금테 안경을 올리며 물었다. 흰 가운이 형광등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
"네. 어제부터요. 제가... 제가 다른 세계의 기억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혀는 이상하게 말끔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 인식 장애라고도 하죠. 흔히 '판타지 드라마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판타지 속 인물이거나, 두 세계를 오가는 존재라고 믿는 증상이죠."
차가운 진단.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어젯밤 생긴 반짝이는 푸른 문양이 여전히 선명했다. 의사 앞에서는 보이지 않게 주문을 걸어두었다.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복용하시면 이런 환각은 사라질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의 사람들은 평범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매일 밤 이 도시 위로 용들이 날아다니고, 요정들이 노래하고, 숨겨진 마법사들이 세계의 균형을 지킨다는 사실을.
아파트 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내 방 책상 위, 내가 쓰고 있던 판타지 소설 원고에서 빛이 났다. 다가가 한 장을 넘기자 잉크가 스며들어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두 세계의 연결고리임을 깨달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의 불빛 사이로 은빛 날개를 가진 생명체들이 날아다녔다. 약병을 열어 알약을 손에 쥐었다. 이것을 삼키면 모든 '환각'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게 정말 환각일까?
책상으로 돌아가 원고에 손을 얹자 푸른 빛이 내 혈관을 따라 흘렀다. 그리고 종이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선택의 시간이다. 현실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네가 만든 세계를 믿을 것인가?"
창가에서 날개 짓 소리가 들렸다. 약병을 내려놓고 펜을 집어 들었다. 어쩌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얇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단지 믿고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