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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회사

판타지 회사: 꿈을 제조하는 곳

"오늘부터 당신의 상상력이 우리 회사의 자산입니다." 면접관의 말이 내 귀에 맴돌았다. 판타지 주식회사, 문 앞에 새겨진 이 단어는 단순한 회사명이 아니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판타지를 제조하는 회사였다.

첫날, 나는 42층 '드래곤 부서'로 배정받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와 함께 진짜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책상마다 작은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무지개빛 액체가 소용돌이쳤다. "저건 아이들의 꿈이에요," 옆자리 동료가 속삭였다. "우리는 그걸 정제해서 판타지로 만드는 거죠."

점심시간, 카페테리아로 향하는 복도는 계절마다 바뀐다고 했다. 오늘은 눈 내리는 겨울 숲이었다. 발걸음마다 눈이 사각거리고, 멀리서 썰매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벽면의 창문 너머로는 전혀 다른 계절의 풍경들이 펼쳐졌다. 이 회사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건 직원들의 표정이었다. 모두가 지쳐 보였다.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지루해질 수 있나요?" 내가 묻자 옆자리의 베테랑 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만드는 건 남의 꿈이지, 우리 꿈이 아니니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회사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42층 너머, 존재하지 않는다는 43층으로 가는 비밀 계단을 발견한 것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올라간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거대한 유리 탱크 속에서 무채색의 액체가 끓고 있었고, 붉은 제복을 입은 임원들이 그 앞에 모여 있었다.

"이번 분기 목표는 백만 리터입니다. 더 많은 현실을 추출해야 합니다." CEO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회사는 판타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을 빼앗아 판타지로 둔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만든 환상적인 이야기 한 조각마다 누군가의 진짜 삶이 조금씩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퇴사를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방 책장에 꽂힌 판타지 소설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책을 펼치자 글자들이 흐려지더니 공백으로 변했다. 내 상상력도, 꿈도 모두 회사에 남겨두고 온 것일까?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의 색채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판타지 주식회사의 오늘 실적이 좋았나 보다.

이제 나는 매일 밤 몰래 판타지를 훔친다. 회사에서 가져온 빈 병에 내 꿈을 담고, 거리의 행인들에게 나눠준다. 그들의 눈에 다시 색이 돌아오는 순간,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진짜 판타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현실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