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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귀신

패션에 홀린 귀신: 마지막 런웨이

마네킹이 움직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부티크 쇼윈도우 안의 그것은 분명히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렸고, 유리를 통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 압구정의 한적한 골목,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는 마감 기한에 쫓겨 패션 매거진 기사를 위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촬영'이라고 다짐하며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쇼윈도우 안의 마네킹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손가락으로 'Come here'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채, 나는 부티크의 문 앞에 섰다. 문은 열쇠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향수와 새 옷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내 코를 찔렀다. 쇼윈도우의 마네킹은 이제 완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아니, 그것은 우아하게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드디어 왔군요. 내 컬렉션을 볼 마지막 사람." 그녀의 목소리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차가웠다. "50년 전, 나는 이 부티크에서 디자이너였어요. 내 마지막 컬렉션을 발표하기 전날 밤, 화재로 모든 작품과 함께 목숨을 잃었죠."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나는 따라갔다. 우리는 평범한 옷장 문을 통과했고, 순간 내 눈앞에 화려한 런웨이가 펼쳐졌다. 관객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런웨이 위에는 마네킹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죽음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컬렉션이에요. 누군가 이것을 보고 기억해주길 바랐죠." 그녀의 눈에는 반세기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마네킹들이 런웨이를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풍 실루엣에 미래적인 소재가 결합된 디자인들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도 충분히 혁신적일 터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촬영했다. 섬광이 터질 때마다 마네킹들은 더욱 생기를 얻는 듯했다.

"내 작품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당신만의 컬렉션을 만드세요. 시간은 흐르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니까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모든 것이 서서히 흐려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부티크 앞 벤치에 누워있었다. 새벽빛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하지만 내 카메라를 확인했을 때, 거기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디자인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는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디자인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오늘, 내 첫 패션쇼가 열리는 날이다. 컬렉션 이름은 '리멤버드'. 관객석 맨 뒷줄에 앉아있는 우아한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상상일까? 그녀는 미소 짓고 있다. 마네킹처럼 완벽한 자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