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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남사친

화장품 남사친: 그림자 속 너를 그리다

처음으로 그의 집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화장대가 아닌 화장품들이었다. 여자가 쓰는 게 아닌, 남자가 쓰는 것도 아닌,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화장품들.

"놀랐어?" 민준이 내 표정을 읽고 웃었다. 10년 지기 남사친의 비밀스러운 취미가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화장대 위에는 파운데이션, 컨실러, 아이섀도 팔레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다양한 크기의 브러시들이 꽂혀 있었다. 화장품 냄새와 물감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이 방 안을 채웠다.

"나, 특수 분장 아티스트 지망생이야. 3년째 몰래 연습하고 있어."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남자가 화장품을 만진다는 것, 그것도 예술로 삼는다는 것이 아직 이해받기 힘든 현실이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이었다. 상처와 흉터, 판타지 속 괴물들, 그리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물 변형까지. 화장품으로 만들어낸 그의 세계는 충격적일 만큼 생생했다.

"보통 친구들에게는 안 보여줘. 너는..." 그가 말을 멈추었다. 그의 눈에는 취약함과 기대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네가 한 거야? 미쳤다."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그의 어깨에서 긴장이 풀렸다.

"실험 대상이 필요한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음 작품에 모델 해줄래?"

한 시간 후, 거울 속 내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 신화 속 요정이 앉아 있었다. 피부는 반짝이는 푸른빛을 띠었고, 관자놀이에서 관자놀이까지 이어지는 나뭇잎 문양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입술은 꽃잎처럼 물들어 있었다.

"민준아, 이거 정말... 대단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 작품 중 최고야."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네 얼굴이니까."

그 순간 10년간 우정이라 불렀던 감정의 윤곽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달라졌다. 화장품으로 그가 그려낸 나의 새로운 모습처럼, 우리의 관계도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남들이 알면 어떨까 봐 숨겼어." 그가 속삭였다. "그런데 네가 봐준다면,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날 밤, 우리는 함께 그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SNS에 그의 작품을 올리기로 했다. 그의 예술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우리의 관계가 남사친을 넘어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지 상상했다. 화장품으로 그가 그린 내 얼굴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이제 숨겨진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