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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썸타기

화장품 썸타기: 우리의 거리

매일 아침 그녀는 내 화장대 위에서 나를 기다렸다. 은은한 파스텔 핑크 용기에 담긴 블러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장품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블러셔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우가 내게 준 첫 선물이었다.

"이거,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날,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몇 번의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우리는 미묘한 '썸'을 타고 있었다. 공식적인 데이트 한 번 없이, 커피 한 잔의 거리를 유지하는 불안정한 관계. 그러나 그 블러셔는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화장품 하나가 내 일상을 바꿔놓았다. 매일 아침 그 블러셔를 바르며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마주할지 상상했다.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이 잦아졌고, 점심시간의 '우연한' 조우는 이제 거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전체가 우리의 눈빛 교환을 지켜보는 듯했다.

"오늘 볼이 예쁘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내 볼이 예쁘게 보였다는 것, 그의 선물이 내 얼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챘다는 것. 이것이 썸의 달콤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대 위의 블러셔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분홍빛 파우더가 하얀 타일 위에 흩뿌려졌다. 마치 우리 관계의 불확실성을 비웃듯이. 그날 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준 블러셔가 깨졌어. 함께 새 것을 골라보는 건 어때?"

답장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그를 마주치지 못했다. 사흘째 되던 날, 동료에게 물었다.

"현우 씨 안 보이네?"

"몰랐어? 갑자기 본사로 발령났대. 어제 짐 싸서 떠났어."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블러셔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날부터 화장대는 텅 비어있었다. 화장을 하는 의미가 사라진 듯했다.

한 달 후,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작은 상자 안에는 익숙한 파스텔 핑크색 블러셔가 들어있었다. 카드가 함께 있었다.

"내가 돌아오면, 이 썸을 제대로 된 관계로 바꿔보자. 그때까지 이 색이 네 볼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나는 새 블러셔를 조심스럽게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때로는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화장품 하나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정의했던 것처럼, 이제 그 거리는 다시 정의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