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장품: 아내의 선택
화장대 위에 놓인 빨간 립스틱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진 것이었다. 뚜껑이 열린 채로, 살짝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사용하다 그대로 두고 간 것처럼.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아내의 입술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신 화장품에 손대지 말아요." 생전에 그녀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값비싼 브랜드도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이제 그녀의 화장대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내는 항상 화장품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파운데이션, 아이섀도, 마스카라... 각각 자기 자리가 있었다. 그녀의 삶도 그랬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려고 노력했다. 우리 가정,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나까지. 하지만 그녀 자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장례식 날, 장의사가 물었다. "부인의 평소 화장 스타일은 어땠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열다섯 해를 함께 살았는데, 아내가 어떤 화장을 좋아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라고 어물쩍 넘겼다. 장의사의 눈빛이 '전형적인 무심한 남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서랍을 정리하던 날, 작은 노트를 발견했다. 화장품 이름과 사용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화장은 내가 나를 만드는 의식이다. 거울 앞에 앉아 붓을 들 때, 그때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내에게 화장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그곳은 그녀만의 성소였다. 매일 아침 그녀는 그곳에서 엄마, 아내, 직장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오늘, 아내의 생일에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화장품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각각의 컬러, 향기, 질감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파운데이션의 살짝 묻은 지문, 브러쉬에 남아있는 파우더, 립스틱에 찍힌 그녀의 입술 모양.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나는 그녀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해가고 있었다.
화장대 서랍 깊숙한 곳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화장품 하나를 발견했다. 쪽지가 붙어 있었다. "당신의 생일 선물. 당신이 화장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며." 그리고 나를 위한 화장품 사용법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함께 늙어갈 때를 위한 준비였을까? 아내는 항상 한 발 앞서 생각했다.
오늘부터 나는 아내의 지침에 따라 화장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울 테지만, 이것이 그녀를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일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 앉아, 그녀가 매일 아침 경험했던 그 의식을 따라가며, 나는 그녀가 되어본다. 화장품을 바르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마음을 한 층씩 발견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