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여행: 피부에 새겨진 기억들
어머니의 화장대는 내 유년기의 지도였다. 반짝이는 유리병과 작은 통들이 나라와 도시처럼 줄지어 있었고, 그 속에 담긴 향기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의 약속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그녀의 화장품 컬렉션을 물려받았다. 각 제품은 사용 흔적과 함께 구입한 장소의 라벨이 붙어 있었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도쿄 긴자', '뉴욕 삭스 피프스 애비뉴'.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늘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둔다고 했지만, 그 특별한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화장품 구매는 죽기 세 달 전 홍콩 여행에서 였다. 골드 케이스에 담긴 붉은색 립스틱,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결심했다. 어머니의 화장품을 들고, 그녀가 다녀간 모든 도시를 방문하기로.
첫 목적지는 파리였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어머니의 향수를 뿌리고 걸었다. 바람에 향이 흩어지면서 왠지 어머니가 내 곁에 함께 걷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도쿄. 비 내리는 긴자에서 그녀의 파운데이션을 살짝 손등에 발랐다. 습기 찬 공기가 베이지색 액체를 피부에 녹여갔다.
도시마다 어머니의 화장품 하나씩을 사용했다. 크림은 로마에서, 아이섀도는 바르셀로나에서, 마스카라는 이스탄불에서. 그 화장품들이 다할 때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결, 그녀의 향기, 심지어 그녀의 걸음걸이까지.
마지막 남은 것은 홍콩에서 산 그 립스틱이었다. 홍콩 빅토리아 하버 앞 호텔 방에서 거울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술에 발랐다. 완벽한 루비색이 내 입술을 물들였다. 그 순간 휴대폰에 알림이 왔다. 호텔 직원이 "Ms. Lee, 로비에 당신을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라고 했다.
로비에 내려가자 웬 노신사가 앉아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미영씨?"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녀의 딸입니다." 내가 답했다.
노신사는 탄식했다. "이런, 립스틱 색이... 그녀와 똑같군요. 30년 전 이 호텔에서 처음 만났을 때, 당신 어머니가 바로 그 색을 바르고 있었어요." 그는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그녀가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늘 이맘때 이 호텔에 온다고 했는데..."
그날 밤, 나는 어머니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녀의 진짜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각 도시마다 남겨진 그녀의 비밀, 꿈, 그리고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사랑. 화장품은 단순한 뷰티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 지도였고, 나는 그 지도를 따라 어머니의 진짜 삶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내 화장품에 라벨을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소 이름 대신, 그날의 감정과 만난На사람들의 이름을 적는다. 언젠가 내 딸이 이 화장품들을 물려받아 그녀만의 여행을 떠날 때, 단순한 장소가 아닌 내 인생의 진짜 지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