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소개팅: 복도에서 시작된 운명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난 그게 회사에서 주선한 '우연한 만남'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그저 커피를 든 손이 떨려 셔츠에 옅은 얼룩을 남긴 어색한 순간이었을 뿐. 인사팀 김 과장의 미소가 평소보다 너무 환했다면 의심했어야 했는데.
"박 대리, 신입 개발자 이성준 씨예요. 오늘부터 우리 팀에서 일하게 됐어요. 좀 챙겨주세요."
그의 손바닥은 내 손보다 컸고, 악수할 때 전해진 온기가 손목까지 번졌다. 묘하게 따뜻했다. 마주 앉은 회의실 테이블 너머로, 그의 눈이 내게 머물 때마다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회의 주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말할 때마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만 계속 눈에 밟혔다.
다음 날, 사내 메신저에 알림이 울렸다.
'점심 같이 드실래요? 회사 근처 맛집 몇 군데 추천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우연이 그리 우연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화가 너무 매끄러웠고, 취향이 너무 비슷했고, 그의 웃음소리가 너무 친숙했다.
"사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인사팀 김 과장님께 부탁드렸어요. 옆 부서에서 일할 때부터 박 대리님이 눈에 띄었거든요. 소개팅처럼요."
식당의 수저 부딪히는 소리,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귓가에서 심장 소리만 울렸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면 부담스러울까 봐... 자연스러운 만남인 것처럼 계획했어요. 실은 개발팀 발령도 제가 요청한 거고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회사에서 진행된 가장 정교한 소개팅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불편해야 할 상황인데, 묘하게 설렜다.
"그럼 제가 마시는 아메리카노도, 제가 자주 가는 구내식당도 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았으면 스토커라고 화를 냈을 텐데, 그의 솔직함 앞에서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럼 이건 회사에서의 첫 만남이 아니라, 우리의 첫 번째 공식 소개팅인 거네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끔은 정성스럽게 계획된 '우연'이 진짜 운명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그날 이후, 회사 복도에서의 마주침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다리며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남았고,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나기 위해 시간을 조절했다. 회사라는 공간이 연애의 무대가 되었다. 가장 형식적인 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랑이 피어났다. 이제 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