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아내 사이: 그림자 속의 진실
내가 회사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빨간 봉투는 아내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담긴 그 봉투는 지난 10년간의 결혼 생활보다 무거웠다. 탁한 형광등 아래서 손가락이 떨렸다. 타인의 손글씨로 적힌 "당신의 아내에 관한 진실"이라는 문구가 눈을 찔렀다.
"김 부장님, 임원회의 시작합니다." 문이 열리며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회의실로 향하는 복도는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었다.
회의는 내게 영화의 자막처럼 흘러갔다. 숫자들, 그래프들, 박수 소리. 모두가 내 프레젠테이션을 칭찬했지만,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2층 회의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흐릿했다. 그곳 어딘가에 아내가 있었다. 내가 알던, 혹은 알지 못했던 아내가.
"오늘 일찍 들어가겠습니다." 팀원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봉투를 열었다. 손가락이 종이를 꺼내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단 한 줄의 메모와 함께 USB가 있었다. "당신이 알아야 할 진실입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망설였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미소 지으며 "오늘 일찍 왔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익숙한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왔어요?" 거실로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가 있었다. 식탁 위에는 정성스럽게 차려진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으로 향했다. 두 개. 그리고 아내 뒤로 보이는 남자의 코트.
"누가 왔었어?" 내 목소리는 낯설게 들렸다.
아내의 표정이 변했다. "회사에서 연락 못 받았어요?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요. 깜짝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생일 축하 메시지들이 연달아 도착했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의 메시지. "서프라이즈 준비했습니다. 사모님이 계획하셨어요."
손에 쥔 USB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아내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무슨 일 있어요?"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회사에 삶을 바치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다.
"누가 이걸 줬어?" 아내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아내는 봉투를 열어보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당신을 해고하려는 회사의 계획이에요. 지난 주 우연히 알게 됐어요. 당신에게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놀라움과 혼란 속에서 나는 아내를 바라봤다. 10년간 함께했지만, 오늘에서야 처음 그녀를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회사와 아내 사이에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