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와 아내: 네 글자에 갇힌 그녀
"당신은 ESTJ예요." 아내가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날 이후 아내는 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앞에 '당신은 ESTJ니까'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ESTJ니까 이런 건 이해 못 할 거야", "ESTJ는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그래", "네가 계획을 중시하는 건 ESTJ 성향 때문이야." 우리 집 냉장고에는 열여섯 개의 색깔 마그넷이 붙어있었다. 아내는 매일 아침 자신의 기분에 따라 INFP, ENFJ, ISFP처럼 네 글자를 재배열했다.
결혼 5년 차, 나는 점점 네 글자 안에 갇혀가고 있었다. 아내의 서랍을 열었을 때, MBTI 해석 책들이 수십 권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침대 밑에서는 '결혼 생활을 지키는 MBTI 궁합 비법'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찾았다. 거실 벽에는 우리 부부의 MBTI 궁합도가 붙어 있었고, 빨간색 X표시가 여러 곳에 그려져 있었다. 아내의 휴대폰을 들여다봤을 때, MBTI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ESTJ 남편과 살기 너무 힘들어요", "ESTJ를 변화시키는 방법 없을까요?"
어느 날 밤, 아내는 내게 자기 전에 한 가지만 대답해달라고 했다. "당신이 진짜 ESTJ가 맞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MBTI 검사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내가 결혼 초기에 내게 붙인 라벨이었을 뿐. "모르겠어. 한 번도 검사해본 적 없어."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맞춰온 건... 대체 뭐였지?"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냉장고에서 모든 MBTI 마그넷을 떼어냈다. 우리는 함께 MBTI 검사를 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내 유형은 ESTJ가 아닌 INFJ였다. 아내는 자신이 INFP가 아닌 ESFJ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5년 동안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MBTI 책들은 모두 기부했고, 냉장고엔 우리 둘의 웃는 사진만 남겨두었다.
이제 아내는 더 이상 나에게 네 글자로 말을 걸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가끔,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아내는 내게 속삭인다. "우리가 알파벳 네 글자에 우리의 인생을 맡겼다니, 웃기지 않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은 네 글자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