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소설: 당신이 창조한 세계의 진실
김현우는 자신이 쓴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깨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개발 중이던 게임 속 주인공이 된 소설 속에 갇혔다.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명확한 현실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현우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응시했다. 푸른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고, 거리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들이 걸어 다녔다.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3D 모델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손끝으로 만지는 나무 책상의 질감, 코를 스치는 낯선 향신료 냄새, 귓가에 들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 모든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꿈이라고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현우는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3년간 개발해온 판타지 RPG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웠다. '용사의 귀환'이라는 게임 속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써내려가던 중 모니터가 번쩍이더니... 바로 이곳으로 끌려왔다.
"잠깐, 내가 마지막으로 쓴 장면이..." 현우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게임 속 용사가 '망각의 성'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썼던 것 같은데, 그 이후는 어떻게 전개하려 했더라?
창가에 놓인 책상 위에는 두꺼운 가죽 장정의 책이 놓여있었다. 조심스레 펼쳐보니 자신이 쓴 소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 다음부터는 백지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설의 결말을 쓰지 않은 채로 이 세계에 갇힌 것이다.
문득 게임 기획서에 적어둔 내용이 떠올랐다. '용사는 망각의 성에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만든 세계의 비밀을 찾아야 하는 건가?
방 구석에 놓인 갑옷과 검이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천천히 일어나 갑옷을 입고 검을 들었다. 무기를 쥐는 순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이상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화면 속에서만 보던 아이템들이 이제 자신의 생존 도구가 되었다.
"내가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를 직접 끝내야겠군." 현우는 중얼거렸다. 창작자가 창조물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는 아이러니. 그는 망각의 성으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창문 밖, 멀리 보이는 어둠에 잠긴 성의 윤곽을 바라보며 현우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는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이 이야기는 애초에 그가 돌아갈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때로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법이니까. 그가 만든 게임 세계가 이제는 그를 위한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