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고백: 여친이라는 이름의 꿈
"인생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남들에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야." 윤재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밤, 드디어 서연에게 고백할 참이었다. 5년간의 우정을 뛰어넘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익숙한 커피 향과 나지막한 재즈 선율이 그를 반겼다. 창가에 앉은 서연은 노트북에 열중해 있었다. 그녀의 까만 머리카락이 형광등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 윤재는 손바닥에 배어나는 땀을 닦으며 다가갔다.
"기다렸어?" 윤재가 물었다.
서연은 고개를 들며 미소지었다. "아니, 방금 왔어. 근데 웬일로 만나자고?"
윤재는 자리에 앉으며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마치 지금 그의 기분처럼.
"서연아, 할 말이 있어." 윤재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 서연이 노트북을 닫으며 물었다.
"우리... 5년 동안 친구로 지냈잖아." 윤재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 널 여친으로 생각해본 적 있어. 아니, 지금도 그래."
서연의 눈이 커졌다. 카페의 소음이 일순간 멀어지는 듯했다.
"윤재야..." 서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솔직히 말할게. 나도 네게 고백할 게 있어."
윤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혹시 서연도 같은 마음일까?
"사실 난 여자친구가 있어. 정확히는... 여자친구들이 있어." 서연이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내가 소설가라는 거 알지? 이건 내 신작이야. '고백과 여친들'이라는 소설."
화면에는 수십 개의 장이 나열되어 있었고, 각 장마다 다른 여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해가 안 돼..." 윤재가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여성향 소설을 써. 하지만 실제 연애 경험이 없어서 항상 한계를 느꼈어." 서연의 말에 윤재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네가 필요했어. 남자 주인공의 감정을 관찰하기 위해. 네가 언젠가 나에게 고백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윤재는 얼어붙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 관계는..."
"연구였어." 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해, 친구로서 너무 좋아하지만 내 소설 속 여친들이 내 전부야."
윤재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오며 찬바람이 그의 뺨을 때렸다. 눈물인지 바람 때문인지 눈가가 따가웠다.
그날 밤, 윤재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새 문서를 열고 제목을 입력했다. "그녀에게 하지 못한 고백". 가슴 속에 남은 말들이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고백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라면, 그의 여친은 언제나 그를 사랑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