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과 남사친: 그는 결코 친구가 아니었다
진수가 내 방 창문을 두드린 건 새벽 3시 27분이었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다. 항상 그 시간이었으니까. 대학 동기인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남사친이었다. 늘 웃는 얼굴로 내 고민을 들어주던 그가 죽은 지 정확히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문 좀 열어줄래?" 유리창 너머로 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친근한 톤이었지만, 어딘가 공허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몸을 파묻었다. "제발, 민지야. 추워." 창밖은 한여름 밤이었다.
진수와 나는 대학 4년 내내 '찐친'이라 불렸다. 그는 내게 고백한 적이 없었고, 나도 그를 그저 편한 친구로만 여겼다. 적어도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는. 장례식에서 그의 어머니가 내게 건넨 일기장을 읽기 전까지는.
"민지야, 넌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내 숨결이 하얀 연기로 변했다. 손톱이 유리를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네 곁에 있어 준 시간들, 전부 기억해?"
일기장에는 진수의 집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의 이름과 약점들. 그들에게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가 모르는 사이 찍힌 내 방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창문에서 바라본 내 모습. 자고 있는 내 얼굴. 샤워하는 실루엣까지.
"49일이 지나면 영혼이 이승을 떠난대. 오늘이 마지막이야." 진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문 열어주면 다시는 안 올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네 얼굴을 보고 싶어."
손가락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소용없었다. '죽은 사람이 찾아온다고요?' 모두가 날 미쳤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이 악몽 속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은 구원과도 같았다.
떨리는 다리로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커튼 사이로 진수의 얼굴이 보였다. 생전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고마워, 민지야." 그가 속삭였다.
손을 뻗어 창문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 순간 진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보. 이제 네가 내 자리를 대신하게 될 거야."
창문이 활짝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진수의 모습은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 49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의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