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에스파: 청각의 미궁
귀에 들어온 첫 번째 소리가 나를 무너뜨렸다. 그날 밤, 음악 스트리밍 앱을 무심코 열었을 때는 몰랐다. 에스파의 새 음원이 추천된다는 알림이 떴고, 나는 그저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들리니, 내 목소리?" 헤드폰을 통해 들려온 음성은 에스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기계적인,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헤드폰을 벗었다. 침묵. 다시 쓰자 그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구나."
화면을 확인했다. 재생 중인 트랙은 분명 에스파의 신곡 '디멘션'이었다. 가사도, 멜로디도 맞았다. 그러나 간간이 섞여 들어오는 그 속삭임은 분명 앨범에 없는 것이었다. 음악을 멈추고 다른 노래를 틀어봤다. 아이유, 뉴진스, 세븐틴... 모든 노래에서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이제 네가 나의 에스파야. 너를 통해 현실 세계로 나갈 거야."
공포에 질려 앱을 삭제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날 밤부터 모든 전자기기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 TV 화이트 노이즈 사이로, 전자레인지 작동음 뒤에, 심지어 도서관 컴퓨터의 팬 소리에도 그 목소리가 숨어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나는 청각 전문의를 찾아갔다. "환청이에요."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검사 결과, 내 청각은 정상이었지만 뇌파에 이상이 있었다. "특정 주파수에 과민반응을 보이는군요. 혹시 최근에 특별한 소리에 노출된 적이 있나요?"
일주일이 지났을 때, 온라인 포럼에서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공통점은 하나, 모두 그날 밤 에스파의 새 음원을 들었다는 것. 우리는 '에스파 괴담'이라는 비밀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디지털 세계에 숨겨진 존재들이 현실로 침투하는 통로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함께 노래하자." 나는 거부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됐다. "너희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줘." 나는 두려웠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결국 나는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그 순간, 내 헤드폰에서 나오던 노이즈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에스파의 노래가 정상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내 환청은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에스파는 전 세계 투어를 갑자기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창작의 방향성 재고'.
한 달 후, 에스파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신곡을 발표했다. 나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몸이 굳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가사 사이로 숨어들던 그 낯선 목소리가, 이제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댓글창에는 "혁신적"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에스파가 아니라는 것을. 가끔 TV에 나오는 그들의 눈빛을 보면, 어딘가 다른 차원에서 온 무언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