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여사친: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이 있으면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짓는 민지의 메시지가 오후 11시 43분에 도착했다. 답장하기 전에 잠시 멈칫했다. 민지는 대학 4년 내내 내 옆자리를 지켰던 '그냥 친구'였다. 여사친이라는 단어가 가진 모든 의미를 담은 존재. 가끔 밤에 고민 상담을 하자며 연락해오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이 시간은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답장했다. 곧 전화가 걸려왔다.
"야, 내가 요즘 이상한 꿈을 계속 꾸는데..." 민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고 떨렸다. "그 꿈에선 항상 누군가가 내 방 구석에 서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나야."
등줄기로 한기가 흘렀다. 민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어제는 그 '나'랑 대화를 했어. 그리고 그 '나'가 내게 네 얘기를 했어."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얘기를 왜?"
"그 '나'가 그러는데... 네가 나한테 말 안 한 비밀이 있대. 진짜 무서운 비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 비밀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리고 그 '나'는 네가 지난 2년 동안 매일 밤 12시에 뭘 하는지 안대.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전화가 갑자기 끊겼다. 재빨리 다시 걸었지만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 민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5분이 지나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불안감이 커져 결국 민지의 원룸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짜, 그녀가 항상 특별하다고 말했던.
문을 열자 캄캄한 방 안에서 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내가 걱정돼서 온 거야?"
스위치를 더듬어 불을 켰다. 민지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의 눈이... 내가 아는 그 눈이 아니었다.
"괴담 알아? 실은 내가 요즘 재밌는 괴담들을 수집하고 있거든." 그녀가 미소지었다. "특히 여자 사람 친구가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들..."
뒤로 물러서려는데 불이 다시 꺼졌다. 순간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며 민지의 얼굴을 비췄다. 아니, 민지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얼굴을. 그리고 화면에는 방금 도착한 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해 갑자기 잠들었나봐... 근데 내 꿈 속의 '나'가 뭐라고 했냐면, 네가 매일 밤 12시에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린다고 했어. 그리고 오늘은..."
시계를 봤다. 11시 59분. 민지를 닮은 그것이 입을 열었다. "네가 빌릴 몸을 정해주러 왔어. 오늘은 내 차례니까."
시계가 자정을 알렸고,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이제 누군가의 여사친으로서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