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같은 짝사랑
그녀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이층 창문 아래 서 있었지만, 유리에 비친 형체는 나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이상한 건 그 그림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 한다는 점이었다. 손을 들면 손을 들고, 고개를 갸웃하면 똑같이 따라 했다. 마치 내 몸에 다른 누군가가 덧씌워진 것 같았다.
하나를 본 지 6개월째, 나는 매일 밤 이렇게 그녀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세 번 만난 소개팅 상대였던 그녀는 내게 더 이상의 만남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닿아 있었다. 거절당한 날부터 시작된 이 감시는 이제 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에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가로등 아래 늘어진 내 그림자는 분명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면 내 눈동자만 검게 변해있곤 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원래대로 돌아와 있어 내 착각이라 생각했다.
"박하나를 보고 있나?"
어느 날 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그는 내가 창문으로 바라보던 하나의 방을 똑같이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도... 하나를 좋아하나요?"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2년 전에 이사 갔어. 지금 저기 사는 건 다른 여자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예요? 저는 매일 저 방에서 하나를 봤어요. 분명 하나가 맞아요."
"나도 그랬어." 남자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처음엔 그녀가 보였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보는 건 내가 보고 싶은 것뿐이었어."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자. 이제 네 차례는 끝났어."
그때 깨달았다. 내 그림자와 닮아 있던 것이, 내 눈동자에 비친 것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남자였다는 것을.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저는... 저는 아직..."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남자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모두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지. 이 짝사랑이 괴담처럼 우릴 삼키기 전까지."
창문을 바라봤다. 방 안에 있는 여자가 아니라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수십 명의 남자들.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검게 변해 있었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여기서 진짜 유령은 우리들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