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노래여사친

잊을 수 없는 노래와 그녀, 그리고 여사친이라는 경계

비가 내리던 밤, 그녀의 노래가 처음 내 귀에 스며든 순간,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술집 구석에 놓인 낡은 피아노 앞에 앉은 여자는 내 오랜 '여사친' 민지였다. 열 살 때부터 함께 자전거를 타고, 대학 입시를 같이 준비하고, 서로의 연애 상담까지 해주던 그 친구.

"오늘만큼은 내 노래를 들어줘," 민지가 말했다.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떨어지는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가녀린 손가락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처음 듣는 멜로디였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압축해 놓은 듯한 멜로디.

그녀의 목소리는 촉촉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처럼 어둡고 깊었다. 가사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 노래였다. 처음으로 민지를 '여자'로 인식한 순간이었다. 노래가 흐르는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술집의 웅성거림은 사라졌고, 빗소리마저 멎은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한 노래야?" 공연이 끝나고 물었다. 민지는 웃기만 했다. 그날 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빗물과 샴푸 냄새가 뒤섞인 향기가 내 감각을 채웠다.

"우리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을까?" 민지가 속삭였다. "여사친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노래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 날, 민지는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어제 진짜 미안해. 술 때문에 이상한 말을 했네. 원래대로 지내자!"

한 달 후, 민지는 캐나다 유학을 간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공항에서 그녀를 배웅하던 날, 민지는 내게 작은 USB를 건넸다. "떠나기 전에 완성했어. 들어봐."

집에 돌아와 USB를 연결했다. 그날 밤 들었던 노래의 완성본이었다. 제목은 '10년간의 여사친'.

노래가 끝나자 음성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 노래는 네게 쓴 거야. 하지만 우리는 선을 넘을 수 없었지. 여사친이라는 이름이 우리를 묶고 있었으니까. 그 울타리를 부수면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어. 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해."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소리가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다시 재생했다. 때로는 가장 친숙한 멜로디 속에서 우리는 가장 낯선 감정을 발견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