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소개팅: 운명의 학점
통계학 수업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숫자들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확률과 우연의 경계가 무너졌다.
"오늘은 조별 과제를 할 건데, 내가 랜덤으로 조를 짜놨어요." 교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그 뒤를 이어 '서지연'이라는 이름이 불렸다.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서 별빛 같은 반짝임이 보였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군 그녀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혹시... 어제 민수가 소개팅 상대라고 했던...?"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도서관 창가에서 마주하기로 했던 바로 그 소개팅 상대였다.
"미안해요, 어제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간 할머니 때문에..." 그녀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벚꽃 향기 같은 샴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괜찮아요. 그런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통계 과제를 함께 하며 우리는 가까워졌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교 카페에서 회귀분석 그래프를 그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과자를 먹을 때마다 입가에 부스러기가 묻었고, 나는 그것을 알려주는 핑계로 그녀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캠퍼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보며 마지막 발표 자료를 정리했다.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사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날 할머니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어요."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럼...?"
"소개팅 사진 봤을 때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소개팅 취소됐다는 연락 받고 안도했어요. 너무 예뻐서 떨릴 것 같았거든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때 그녀의 노트북 화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그동안 수집한 데이터, 분석한 결과, 그리고 마지막 결론: '대학 내 랜덤으로 구성된 조별활동에서 연인이 될 확률 - 0.0035%'
"우리 이거 발표하면 A+ 받을 수 있을까?"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표본이 너무 작아서..." 내가 답했다.
그녀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그럼 표본을 늘려볼까요? 우리가 정말 연인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지..."
캠퍼스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완벽하게 계산된 소개팅보다, 통계학 수업에서의 무작위 배정이 더 정확한 운명의 방정식을 풀어내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