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소설: 그 책에서 시작된 이야기
책장 사이로 그녀가 나를 훔쳐봤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서점의 희미한 조명 아래, 소설 코너에서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번. 내가 들고 있던 책은 까뮈의 '이방인'이었고, 그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 책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겁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의 눈이 둥그레졌다. 입술이 살짝 열리더니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따뜻했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셨나요?"
그렇게 우리의 첫 대화가 시작됐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우린 서점의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이 혀끝에서 맴돌 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은 미나라고 했다. 그녀는 소설 속 세계를 현실보다 더 진실하다고 믿는 대학원생이었다.
"소설은 거짓말로 만들어진 진실이에요." 미나가 말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 속의 감정은 누구보다 진짜죠."
첫 데이트는 그렇게 소설에 관한 대화로 꽃피웠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는 둘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교환했고, 세 번째에는 야외 독서 데이트를 했다. 넷째 날에는 함께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원작 소설에 대해 밤새 토론했다. 다섯 번째 만남, 그녀의 작은 원룸에서 와인을 마시며 우리는 처음으로 키스했다.
"우리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소설이 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그 결말은 아직 써지지 않았어요."
열 번째 데이트에서 나는 그녀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반지가 아닌, 손글씨로 가득 채운 수첩이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미나에게: 우리의 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와 내가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써놓은 것이었다.
미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게 무슨 뜻이죠?"
"당신이 결말을 써줬으면 해요."
그녀는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엔 내 질문이 적혀 있었다. '이 소설의 다음 장을 함께 써볼까요?'
미나는 펜을 들었고, 오랜 시간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녀가 수첩에 뭔가를 적고 나에게 건넸다. 내가 읽은 그녀의 답은 단 한 단어였다. 그 단어는 모든 소설이 품고 있는 가능성만큼이나 광활했고, 그 페이지에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