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소개팅: 게임처럼 던져진 주사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주사위 굴림만으로도 충분했다. 상대를 처음 봤을 때 박준호는 이미 이 소개팅이 보드게임 한 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중간에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카페 창가에 앉아 기다리는 그녀는 햇살에 비친 검은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박준호 씨죠? 저 정미연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놀랍게도 첫 마디가 "혹시 보드게임 좋아하세요?"였다. 준호의 눈이 커졌다. 프로필에 적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취미를 어떻게 알았을까. 공통점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미묘한 경계심이 솟아올랐다.
"네, 좋아해요. 어떻게 아셨어요?" 준호가 물었다.
미연은 웃으며 손가방에서 작은 주사위를 꺼냈다. "느낌이요.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그녀는 테이블에 주사위를 굴렸다. 4가 나왔다. "오늘은 제가 네 가지 질문을 할게요. 정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커피를 마시며 미연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준호는 이 만남이 단순한 소개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질문들은 마치 전략 게임의 카드를 뽑듯 예측할 수 없었다. "가장 후회하는 선택은 뭐예요?", "진짜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을 자주 하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저에게 끌려요?"
마지막 질문에 준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솔직히, "네"라고 답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준호의 차례였다. 주사위를 굴렸고, 6이 나왔다.
"여섯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네요."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규칙에선 6은 '진실의 순간'이에요. 저에 대한 진실을 하나 말씀드릴게요." 미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사실... 저는 당신 친구 영석이가 보낸 사람이에요. 당신이 소개팅에서 늘 같은 패턴으로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해서, 그 패턴을 깨보려고 왔어요."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영석이의 장난이었던가. 하지만 미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예요? 그러면 왜..." 준호의 말이 끊겼다.
"아니요, 이것도 게임의 일부예요. 진실인지 거짓인지 맞혀보세요." 미연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인생이 보드게임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요? 러브레터? 아니면 블러핑 게임?"
준호는 그제서야 이 만남의 본질을 이해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방어막을 치고, 상대를 시험하고 있었다. 마치 보드게임에서 다음 수를 읽으려 애쓰는 것처럼. 그는 테이블 위의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다음 라운드를 시작할까요?" 준호가 물었다. 그의 손에서 주사위가 굴러갔고, 운명의 숫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규칙을 정할 차례였다. 결국 소개팅도, 인생도, 모든 관계도 누가 만들었든 결국 함께 규칙을 수정해가는 게임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