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밤: 여친이 떠난 후
내 여친은 평소와 다름없이 말했다. "오늘 보드게임 약속 있다며."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암시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떠난 거실의 테이블 위에 남겨진 체스판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둔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퀸이 내 킹을 노려보고 있었다. 체크메이트 직전.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동네 보드게임 카페였다. 나는 혼자 앉아 체스판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왁자지껄 웃고 있었다. "같이 플레이해도 될까요?"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이미 그녀에게 첫 수를 내준 셈이었다. 폰을 앞으로 두 칸 움직이듯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매주 금요일 밤은 우리의 보드게임 데이트였다. 때로는 카탄의 개척자들, 때로는 다빈치 코드, 가끔은 방 탈출 게임까지. 그녀는 이겼을 때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졌을 때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항상 "다시 한 번!"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게임에서만 재도전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그녀는 자신의 말들을 하나씩 챙겨 가방에 넣었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드게임에 익숙한 나는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데 능했다. 그녀의 옷가지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체크메이트로 이어질 줄은 몰랐을 뿐.
"나 친구들이랑 보드게임 하기로 했어."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친구들' 중에는 그녀가 몇 주 전부터 언급했던 새로운 게임 파트너가 있을 거라는 것을. 더 재미있고, 더 잘생기고, 더 많은 전략을 가진 누군가.
이제 나는 매주 금요일 밤, 홀로 보드게임들을 펼쳐놓고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긴다. 가끔은 그녀의 자리에 인형을 놓고 게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병적이라고? 어쩌면. 하지만 모든 게임에는 진자와 패자가 있는 법. 그리고 나는 아직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밤, 그녀가 남겨둔 체스판 위의 퀸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모든 관계는 결국 보드게임과 같아서, 때로는 운이 필요하고, 때로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이 끝난 후에도 상대방과 다시 마주 앉을 수 있는 여유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테이블에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 테고, 나는 여전히 체크메이트 직전에 멈춰 있다.
내 손이 킹을 쓰러뜨린다. 이제 정말 게임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이라는 보드게임에서는 때로 져줘야만 다음 판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