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비밀여사친

비밀과 여사친: 말할 수 없는 그림자

그녀의 카톡 프로필이 바뀐 건 새벽 세 시 오십칠분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왜 깨어 있었는지, 왜 하필 그녀의 프로필을 확인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없었다. 민지는 내 '그냥 친구'였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나는 여자친구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해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 할 얘기가 있어." 출근길, 민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이 긴장으로 경직되었다. 사무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여사친한테서 연락이 왔어"라고 대답했다. '여사친'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편리한가. 그 단어 하나로 모든 의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우리는 합정역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민지의 머리카락에서는 언제나처럼 사과 샴푸 향이 났다.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나 다음 주에 호주로 떠나."

"갑자기 왜?" 내 목소리가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

"워킹 홀리데이. 1년 정도 있다 올 거야." 그녀의 눈동자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사실... 너한테 거리를 두고 싶어서."

텅 빈 듯한 카페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 크게 들렸다. 창밖으로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내 심장 박동과 겹쳐졌다.

"우리... 그냥 친구잖아." 내가 말했다.

민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우린 '그냥 친구'야. 그런데 왜 네 여자친구 앞에서는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아? 왜 새벽에 내 카톡을 확인해? 왜 항상 우리 둘만 아는 농담을 지어내고, 우리 둘만의 장소를 만들려고 해?"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밀은 때로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그 존재감이 너무 크다. 우리 사이에는 연애도, 우정도 아닌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여사친'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도 이런 관계가 편하지 않아." 민지가 말했다. "네가 여자친구한테 불륜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우리 둘 다 알잖아."

그녀가 일어서며 작별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그녀를 잡지 못했다. 비가 오는 카페 창가에 홀로 남겨진 나는 '여사친'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험한 비밀을 감추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때로는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은 감정을 숨기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그런 비밀은 결국 누군가를 떠나게 만든다.

그날 밤, 나는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그녀의 상태 메시지는 "안녕, 서울"로 바뀌어 있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떨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보내지 못했다. 어쩌면 진짜 비밀은, 내가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