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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여친

비밀의 여친: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무게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존재하지 않는 연인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나에겐 그 순간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되었다.

"야, 너 여자친구 있다며? 사진 한 번 봐볼까?" 친구 민수의 집요한 질문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스마트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었지만, 거기엔 지하철 노선도와 게임 스크린샷뿐이었다. 그때 민수의 시선을 피해 엄지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SNS 앱을 열었고, 우연히 뜬 광고 속 모델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여기, 이게 우리 지은이." 그렇게 태어난 가상의 여자친구 지은이는 순식간에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처음엔 간단했다. "지은이 오늘 학원 가서 못 만났어"라는 변명 한 줄로 친구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은이의 학교, 취미, 우리의 데이트 코스까지 하나하나 만들어내야 했다. 밤마다 검색창에 '여자친구와 가면 좋은 곳', '여자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입력하며 디테일을 쌓아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을 때, 지은이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빗소리를 좋아하고, 딸기 알레르기가 있으며,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여자. 심지어 나는 지은이와 주고받았을 법한 카톡 대화를 혼자 만들어 스크린샷까지 찍어두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졌다.

여름 축제에서 일이 터졌다. "너네 여친 진짜 없지?" 술에 취한 민수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다들 알아. 그냥 솔직히 말해." 목구멍까지 차오른 진실을 억누르며 나는 웃었다. "뭔 소리야. 지은이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순간 민수의 눈에서 동정의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이 내 거짓을 완전히 관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알림창에 뜬 메시지. "오빠, 나 지은이야. 오늘 축제 재밌었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열었다. 프로필 사진은 내가 친구들에게 보여줬던 바로 그 여자였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답장을 보냈다. "누구세요?"

"나 몰라? 네가 만든 여자친구야. 이제 정말 만나볼까?"

그날 밤, 나는 모든 친구에게 거짓말을 고백했다. 민수는 웃으며 말했다. "다 알고 있었어. 근데 누가 너한테 그런 장난을 친 거지?" 내 등골이 오싹해졌다. 밤새 메시지를 보낸 번호로 전화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안내만 들려왔다.

가끔 밤에 혼자 있을 때면, 휴대폰 화면이 저절로 켜지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지은이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비밀들은, 결국 우리를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