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소개팅: 마지막 인연을 찾아서
세상이 끝난 지 563일째, 나는 오늘도 소개팅을 나간다. 붉은 하늘 아래 비틀거리는 좀비들 사이로 칼날을 꽂아넣으며 약속 장소로 향한다. 아포칼립스 이후 남은 인류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서바이벌 소개팅'은 인류 존속을 위한 정부의 공식 프로그램이 되었다.
"김태준 님, 맞으신가요?" 버려진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여자가 물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묶여 있고, 낡은 군용 재킷 안쪽에 작은 권총이 반짝였다. 그녀의 눈이 내 팔에 난 상처를 스캔하듯 훑었다.
"네, 이수연 씨죠? 오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내가 그녀 앞에 앉으며 말했다. 테이블 위에는 희귀해진 커피 두 잔이 놓여있었다. 그 향기는 잠시나마 우리가 과거의 평범한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프로필에 '생존 스킬: A+'라고 적으셨던데, 과장된 건 아니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지만, 그 눈빛은 진지했다. 이건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 문제였다. 생존자들끼리의 소개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도, 성격도 아닌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였다.
"지난 달에는 서울 외곽에서 좀비 40마리를 혼자 처리했어요. 증명서도 있습니다." 내가 군용 가방에서 정부 인증 증명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수연 씨는 어떤 특기가 있으신가요?"
"의약품 제조와 응급 처치요. 지금까지 17명의 생존자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했죠."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주먹밥도 맛있게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는 웃었다. 이상하게도, 세상이 멸망한 후에야 이렇게 솔직한 웃음을 찾게 되었다. 소개팅 매뉴얼대로 서로의 생존 이력, 피난처 상황, 물자 보유량에 대해 이야기했다. 형식적인 질문들이 오가던 중, 카페 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엎드려요!" 내가 소리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테이블을 뒤집고 총을 꺼내들었다. 우리는 눈빛만으로 의사소통했다. 나는 왼쪽으로, 그녀는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싸워온 파트너처럼.
습격자들을 물리친 후, 피와 화약 냄새 속에서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잘 맞는 것 같아요?"
나는 무너진 카페 천장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직 소개팅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첫 데이트를 함께 했네요."
그날 밤, 우리는 더 이상 정부의 '생존을 위한 짝짓기'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니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단순한 생존 파트너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세상은 끝났지만, 어쩌면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포칼립스 이후의 소개팅에서, 우리는 생존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