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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소설

생존 소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그걸 눈앞에서 목격했다. 글리터를 뒤집어쓴 행인들 사이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한 남자의 눈빛이, 내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의 것과 똑같았으니까.

난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니, 정확히는 '였다'가 맞을 것이다. 열여덟 권의 재난 소설을 썼고, 그중 열다섯 권이 영화화됐다. 내 소설 속 세상은 항상 무너져 내렸고, 주인공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했다. 적어도 종이 위에서는.

연필 끝에서 피어난 재앙들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페이지 위의 상상력이 실제 거리를 뒤덮을 거라고는. 하늘이 검붉게 변한 건 내 열일곱 번째 소설 '붉은 하늘 아래'의 첫 장면과 똑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책 '최후의 호흡'을 탈고한 날, 첫 번째 생존자가 쓰러졌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텅 빈 거리는 내가 묘사했던 그대로다. 부서진 건물들, 뒤집힌 자동차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잿빛 먼지. 코를 찌르는 불탄 고무와 금속 냄새. 귀를 파고드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내 손끝에서 탄생한 디스토피아가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한다." 내 책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그 누군가가 나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용감하지도, 현명하지도, 강인하지도 않은 내가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

책장 위 내 소설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수많은 독자들이 읽었던 그 참혹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생존 매뉴얼이 되어버렸다. 마치 내가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하지만 그건 단지 상상력의 산물이었을 뿐인데.

오늘 아침, 마지막 라디오 방송이 끊겼다. 배터리가 떨어진 휴대폰엔 마지막 뉴스 알림이 남아있다: "작가 그렇게 쓴 대로 세상은 무너졌다"

내 책상 위에는 완성되지 않은 새 소설의 원고가 놓여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이다. 한 페이지밖에 쓰지 못했다. 펜을 들고 생각한다.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용기를 내어 다시 펜을 든다. 아마도 이것이 진짜 생존이란 건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 비록 독자가 나 하나뿐일지라도.

창문 너머로 붉은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마지막 남은 촛불 아래, 나는 새로운 세계를 써내려간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우리의 생존을 위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