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의 계단: 대학교 캠퍼스의 운명적 만남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개팅은 상대방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수진은 카페 창가에 앉아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이 불길한 예감과 싸우고 있었다. 손끝으로 따뜻한 라떼 잔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대학교 3학년이라는 그의 프로필 정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카페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단정한 느낌의 남자. 그리고 수진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맞다. 그는 분명 지난 학기 교양 수업에서 발표를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발표 중간에 노트북이 다운되어 당황했던 모습까지 선명하게 기억났다. 더 최악인 것은, 그날 수진이 친구와 나눈 "저 사람 발표 너무 재미없어"라는 속삭임을 그가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심리학개론 들으셨나요?"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수진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 지난 학기에요." 수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알아봤어요. 당신이 그때 뒷자리에 앉았던..." 그가 미소를 지었다. "제 발표 중에 노트북이 다운됐을 때, 유일하게 웃지 않고 USB를 빌려줬던 사람."
수진은 얼어붙었다. USB를 빌려준 기억이 없었다. 그건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확신에 찬 표정을 보니 반박할 수 없었다.
"아, 네..." 수진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소개팅은 이상하게도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는 유머 감각이 있었고, 대학 캠퍼스 이야기로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수진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기억하는 친절한 여학생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 고백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카페를 나와 캠퍼스를 걷는 동안, 그는 학교의 낡은 계단을 가리켰다. "여기서 처음 당신을 봤어요. 발표 전날,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연습하고 있었거든요. 당신이 지나가면서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줬죠."
수진은 그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 나오며 낯선 남학생에게 건넸던 무심코 한 응원. 하지만 그게 심리학개론 발표자였다는 건 몰랐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발표 시간에 친구에게 한 말은... '저 사람 발표 준비 어제 밤늦게까지 했대. 너무 긴장한 것 같아 안쓰러워.'였다.
"사실... 제가 기억하는 게 좀 달라요." 수진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당신이 내 발표를 재미없다고 한 것도 들었어요. 괜찮아요. 정말 재미없는 발표였으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대학교 캠퍼스의 저녁 노을이 두 사람을 붉게 물들였다. 수진은 생각했다. 어쩌면 가장 불행한 소개팅은 상대방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연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