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의 비밀: 우리가 감추는 것들
네 번째 소개팅에서도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거짓말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지영은 커피를 마시며 살짝 미소 지었다. "저는 여행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해요." 사실 지영은 비행기를 타면 극심한 공황장애가 온다. 하지만 소개팅에서 이런 약점을 드러낼 순 없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와, 저도 여행 너무 좋아해요! 다음 달에 발리 가는데 혹시..." 지영은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느낌에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카페 창가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했다.
지영의 소개팅 프로필은 완벽했다. 대기업 마케팅 팀장, 두 개 국어 능통, 취미는 여행과 베이킹. 현실은? 중소기업 사원에 영어도 겨우, 여행은 공포, 베이킹은 유튜브로만 본 적 있음. 그녀가 이런 가면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근데 정말 신기해요. 당신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좋네요." 남자의 말에 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진은 포토샵과 필터의 합작품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쌓아올린 가짜 페르소나가 무너질까 두려워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쪽은요? 프로필에 취미가 등산이라고 되어있던데." 지영은 상대방도 자신처럼 가면을 쓰고 있을지 궁금했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한 번도 등산한 적 없어요. 그냥 소개팅 프로필에 넣으면 건강해 보일 것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솔직함에 지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창밖으로 보이는 행인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걸어가는 모습이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감추고 살아갈까.
"사실 저..." 지영이 입을 열었다. "저는 여행 별로 안 좋아해요. 아니, 정확히는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못 타요."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 완벽하게 쌓아온 가면에 스스로 금을 낸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남자의 표정은 밝아졌다. "정말요? 그럼 우리 다음에 국내여행 어때요? 제주도 같은 데." 그의 눈에는 판단이 아닌 이해가 담겨 있었다.
지영은 처음으로 진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이 소개팅에서만큼은 모든 비밀을 하나씩 벗어던져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연결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소개팅 멘토링 앱'에서 보낸 새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늘의 팁: 첫 만남에서는 비밀을 간직하세요." 지영은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고, 처음으로 조언을 무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