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의 소설: 우리가 쓰는 현실
"모든 소개팅은 미완성 소설의 첫 장이다." 커피숍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며 소라는 거울 속 자신에게 속삭였다. 집에서 꺼내온 소설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한 그녀는 항상 그랬듯 시간을 글자 속에 묻었다.
오늘의 소개팅 상대는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정보만 알고 있었다. 출판사 편집자인 소라에게 동료가 주선한 만남이었다. 카페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남자는 그녀의 상상과 달랐다. 뒤로 넘긴 머리, 단정한 셔츠,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라가 읽고 있던 바로 그 소설책이었다.
"혹시 소라 씨?"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처럼 기억에 남을 것 같은 톤이었다.
"네, 민준 씨군요." 소라는 책을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문학에 대한 취향, 좋아하는 작가, 그리고 그들이 쓴 세계에 대한 해석까지. 민준은 자신의 미완성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고, 소라는 출판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커피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오후의 햇살이 저녁의 어둠으로 바뀌어도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소설의 주인공이 떠올랐어요." 민준이 말했다.
소라는 웃었다. "그럼 당신은 이미 우리의 소개팅을 소설로 쓰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요." 민준의 눈이 반짝였다. "모든 만남은 소설의 시작이니까요."
헤어질 시간, 민준은 소라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제 미완성 원고예요. 읽어보고 싶다면요."
집에 돌아온 소라는 호기심에 봉투를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놀랍게도 오늘 그들이 만난 카페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은 다름 아닌 '소라'였다. 소설은 그녀가 카페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했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손글씨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다음 장은 당신과 함께 써보고 싶습니다."
소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어쩌면 소개팅은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소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모든 현실이 그렇듯,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미리 쓰여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한 글자씩 써내려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가장 예측불가능한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