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의 화장품: 피부보다 깊은 곳
거울 속 내 얼굴에 하나씩 쌓이는 가면의 레이어들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베이스, 컨실러, 파운데이션, 블러셔, 하이라이터... 소개팅을 앞둔 내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진보다 예쁘시네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건넨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 시간 전부터 공들인 메이크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처음 만난 그는 사진보다 훨씬 매력적이었고, 대화는 의외로 술술 풀렸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떠나지 않을 때마다 화장품 광고 모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신다고요?" 내 직업을 물었을 때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R&D 부서에서 신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러자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래서 그렇게 완벽한 메이크업을 하고 계셨군요. 직업병이신가봐요."
순간 따끔했다. 그의 말이 칭찬인지 비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커피잔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컵 테두리에 옅게 묻어나는 립스틱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개발하는 건 대부분 상처 치료용 기능성 화장품이에요. 화상 흉터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죠."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제 오른쪽 뺨에 있는 이 흉터도 사실은 어릴 적 화상 때문에 생긴 거예요. 제가 지금 바르고 있는 것도 제가 개발 중인 제품이고요."
내 말이 끝나자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는 내 오른쪽 뺨을 자세히 살펴보려 애썼지만, 완벽하게 가려진 흉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눈에서 진심 어린 호기심이 피어났다. "정말 대단하네요. 전혀 몰랐어요."
대화는 그 순간부터 달라졌다. 우리는 피상적인 첫인상을 넘어 진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 수술 흉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화상 후 트라우마를 극복한 과정을 털어놓았다. 메이크업이 조금씩 지워지면서 오히려 우리의 대화는 더 진실되어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울 앞에 다시 선 나는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레이어가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이상하게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클렌징 오일이 내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며 모든 화장을 씻어냈을 때, 오른쪽 뺨의 희미한 흉터가 드러났다. 오늘 처음으로 그 흉터가 내게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의 메시지였다. "다음에는 화장 좀 덜 하고 만나요. 당신의 진짜 얼굴이 더 궁금해졌거든요." 거울 속의 나는 흉터와 함께 미소 지었다. 때로는 가장 완벽한 화장품조차 가려줄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걸 소개팅 자리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