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괴담: 남겨진 문장들
그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이 나타났다. 내 소설의 주인공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소설가다. 괴담 전문 작가로, 열 번의 베스트셀러를 낸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슬럼프에 빠져 새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평소처럼 노트북을 켜고 새 소설의 초고를 살펴보고 있었다. 주인공 '민수'가 폐가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썼는데, 문득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어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을 때, 화면에는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이 있었다.
"작가님, 저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그 '것'이 쫓아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했다. 동료 작가가 원격으로 접속해 장난을 친 것일까?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고, 노트북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웠다. 하지만 다시 문장이 나타났다.
"제발요. 당신이 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실제로 고통받고 있어요. 당신이 묘사한 괴물은 실제로 존재해요. 작가님이 쓴 공포는 우리에겐 현실이에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는데도 글자가 계속 타이핑되었다. 모니터에서는 까맣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에는 오래된 책과 썩은 나무 냄새가 섞인 이상한 향기가 퍼졌다.
"작가님이 쓴 모든 괴담은 어딘가에 실존해요. 당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히 같은 공포를 반복해야 하죠. 이제는 당신을 이 세계로 초대할 시간입니다."
노트북을 닫으려 했지만 열려 있는 문서가 저장되지 않았다는 경고창이 떴다. 습관적으로 '저장' 버튼을 눌렀고, 그 순간 모니터가 번쩍였다. 내 손가락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내 손목까지 모니터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갑자기 전원이 나갔다. 컴퓨터가 꺼졌다. 손은 무사했다. 심장이 광란적으로 뛰었다. 진정하고 나서 다시 컴퓨터를 켰을 때, 모든 문서가 사라졌다. 대신 바탕화면에는 낯선 텍스트 파일 하나가 있었다.
"이번엔 실패했지만, 당신이 다음 괴담을 쓸 때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모든 작가는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 날 이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내가 쓰지 않은 문장들이 메모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어젯밤, 잠에서 깼을 때 침대 옆에 낯선 노트북이 있었다. 켜보니 새로운 소설의 첫 문장이 써있었다: "그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