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이어트: 살 빼는 이야기
내가 쓴 소설 주인공은 살을 빼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서랍 속에 쳐박아둔 미완성 원고를 꺼내 읽다가 느낀 기이한 현상이었다. 주인공 수아의 탄탄한 근육과 정제된 몸매를 묘사하는 문장들을 수정하는 사이, 내 허벅지가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라 여겼다.
그날 밤,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어제보다 정확히 500그램이 줄어들어 있었다. 우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소설 속 수아가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는 장면을 추가했더니 또다시 500그램이 감량됐다. 이젠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명확한 패턴이었다.
"이거... 진짜야?" 모니터 앞에 앉아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얹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소설 속 주인공 수아가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런닝머신을 뛰는 장면을 써내려갔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 이마에 맺힌 땀방울, 근육이 타는 듯한 아픔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고, 다리는 실제로 뛰었던 것처럼 욱신거렸다.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숫자는 또 1kg 줄어있었다. 소설이 내 몸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다. 수아는 소설 속에서 점점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그와 비례해 현실의 내 몸도 변했다. 옷이 헐렁해졌고, 거울 속 실루엣은 날마다 달라졌다.
한 달 후, 목표 체중에 도달했을 때 소설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소설이 내 다이어트의 근원이라면, 소설의 완성은 다이어트의 끝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포에 휩싸여 소설의 마지막 장을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전에 투고했던 소설의 출간을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흥분으로 소설 속 수아의 서사를 마침내 완성했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다이어트를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출판 계약서에 서명한 날, 소설 속 수아처럼 나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체중계의 숫자는 더 이상 줄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소설이 끝났지만, 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며칠 후,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 꿈인 사람. 첫 문장을 타이핑하는 순간, 다리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달리기 시작할 차례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