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소설로맨스

소설 속 로맨스: 현실이 된 픽션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소설 속 그 남자가 내 아파트 거실에 서 있었다. 내가 쓰던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살과 피를 입고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무엇보다 왼쪽 눈썹 위의 그 작은 흉터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안녕, 지민아."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따뜻한 꿀처럼 귓가에 스며들었다. 내가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바로 그 음색이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아직 쓰다 만 내 로맨스 소설이 열려 있었다. '주인공 태오는 지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문장까지만 써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태오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정말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이죠?" 내 목소리가 떨렸다. 태오는 미소를 지었다. 소설 속에서 그가 지을 법한 바로 그 미소였다.

"그걸 설명하려면 긴 이야기가 필요해.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네가 나를 너무 생생하게 상상했어. 그리고 네 소설 속 세계는 다른 차원으로 실재해." 그의 설명은 황당했지만, 눈앞의 현실은 더 황당했다.

그날 밤, 우리는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는 한강변을 걸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태오와 함께 있으니 따뜻했다. 그는 내가 아직 쓰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당신의 운명은 내 손끝에 달려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로맨스는 어떻게 끝나지?" 그가 물었다.

"보통 로맨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독자들이 좋아해." 내가 대답했다.

태오는 강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했다. "만약 내가 소설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여기 현실에 남는다면?"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 그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만든 캐릭터, 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잉크와 종이 사이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쓰기 시작했다. '태오는 지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거야."' 마지막 문장을 쓰고 파일을 저장한 후, 뒤를 돌아봤다. 태오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실재하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가 소설 밖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야기도 어딘가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