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여사친: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
내가 쓴 소설 속 여주인공이 어느 날 나의 여사친이 되었다. 처음엔 오해였다. 카페 구석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내 소설의 주인공 '민지'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웃고 있었다.
"야, 정현아. 오랜만이다. 알아보겠어?"
당연히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민지는 내가 창조한 인물이었으니까. 짧게 자른 단발머리, 약간 째진 눈, 왼쪽 뺨에 작은 점까지. 내가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다만 소설 속에서는 그녀가 내 첫사랑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내 '여사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잠깐, 난 너를 모르는데..."
그녀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작가라는 거구나. 항상 소설 같은 상상을 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카페의 재즈 음악과 어우러져 묘하게 친숙했다. 아메리카노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우리 사이를 희미하게 가렸다가 사라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녀와 자주 만났다. 그녀는 내 소설 속 민지와 너무나 흡사했다. 웃을 때마다 짓는 눈가의 주름도, 말을 할 때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습관도. 이상했다. 내가 소설에 쓴 내용들을 마치 자신의 과거처럼 이야기했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녀와 시간을 보낼수록 묘한 친밀감이 자라났다.
"네 소설 이번 주에 출간된다며? 축하해." 그녀가 커피숍에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출판 소식을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가 소설 속 민지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출간일 아침, 소설을 펼쳐보고 경악했다. 마지막 장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내가 쓴 결말은 민지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었는데, 변경된 결말에서는 그녀가 작가인 주인공의 세계로 넘어와 '여사친'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놀란 마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지금 걸려온 전화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입니다"라는 기계음만 들려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피우려 주머니를 뒤적이다 쪽지를 발견했다. "결말이 마음에 들어? 이제 내 차례야. 너를 내 소설 속으로 데려갈 거야." 글씨체는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자 새로운 워드 파일이 열려 있었다. 제목은 단 한 줄. '소설가와 그의 여사친'.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손가락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