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소설패션

소설 속 패션: 옷에 새겨진 이야기

모든 글자가 타들어 가는 순간을 목격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펜 끝으로 소설 속에 그려낸 청록색 드레스의 주름이 실제 세계에서 불꽃처럼 일렁이며 내 옷장 속 드레스로 물질화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했다. 소설 속 주인공 '하연'이 입은 옷이 내 옷장에 똑같이 존재한다는 것쯤이야.

그러나 두 번째는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검은색 코트의 은빛 단추 세 개, 소매 끝의 미세한 올풀림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코트가 어느 날 아침 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 마치 내가 소설 속 인물이 된 것처럼 그들은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쓴 옷의 이야기는 현실이 됩니다."

어느 날 우편함에 도착한 낯선 쪽지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쪽지에는 내가 쓴 소설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 내가 묘사한 옷들이 실존하게 된다면,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옷에 대해 쓴다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에 나는 붉은 니트 스웨터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 스웨터는 살인자의 복장이었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내 옷장 속 같은 색상의 니트가 사라졌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내가 소설 속에 그려낸 드레스는 파티에서 여왕을 만들었고, 내가 묘사한 샤넬 재킷은 면접장에서 승리를 선사했다. 글자와 실밥, 문장과 직물이 하나로 얽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원고지 위에 떨리는 손으로 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든 색을 담은 투명한 옷을 입었다. 그 옷은 그녀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날 밤, 거울 앞에 선 나는 맨살이 아닌 이야기로 짜인 투명한 천으로 몸이 감싸인 것을 발견했다. 내가 쓴 모든 문장, 만들어낸 모든 인물들이 실로 변해 내 피부에 새겨지고 있었다.

소설가로서 나는 늘 글자로 세상을 창조했지만, 이제는 실과 바늘로 현실을 수정하고 있었다. 패션과 소설, 두 세계는 결국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되고 싶은 누군가를 창조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이야말로 가장 먼저 쓰는 소설인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입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