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속 괴담: 12시간의 저주
작업실 모니터가 꺼지자 그때부터였다. 화면 속 내가 그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6년째 일하는 캐릭터 디자이너다. 막바지 작업 중이던 심야,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고 모니터가 꺼졌다가 다시 켜졌을 때 내가 그린 소녀 캐릭터 '미카'가 화면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 저장된 파일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처럼 보였지만, 나는 미카에게 그런 모션을 입힌 적이 없었다.
"도와줘요, 선생님."
목소리는 헤드폰에서 새어 나왔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미카는 내 최신 작품의 주인공으로, 아직 목소리 녹음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이 화면 안은 너무 어두워요. 밤이 되면 그 사람이 와요."
화면 속 미카는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만들어진 디지털 세계는 시퀀스 몇 개와 배경 몇 장뿐인데, 그녀는 마치 그곳이 완전한 세계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사람이 누구야?" 내 질문에 미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선생님이 지운 캐릭터요. 그가 매일 밤 나를 찾아와요. 당신이 나를 완성하지 않으면 그가 나를 데려갈 거래요."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2년 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남자 주인공 '하루'를 디자인했었다. 하지만 컨셉이 변경되면서 그 캐릭터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디지털 쓰레기통으로 보냈을 뿐인데.
미카의 목소리가 점점 다급해졌다. "선생님, 12시간 안에 저를 완성해 주세요. 내일 밤 자정이 되면 그 사람이 다시 올 거예요. 제발요."
화면이 깜빡이더니 미카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 평소처럼 작업 중이던 애니메이션 파일만 남았다. 나는 집에 가지 못하고 밤을 새웠다.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미카의 캐릭터 디자인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색감, 세부 디테일, 표정 시트까지 모두 완성했다.
다음 날 밤, 자정이 다가왔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화면 속에서 미카가 완성된 모습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지웠다고 생각했던 '하루'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디자인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왜곡된 얼굴, 너무 길게 늘어진 팔, 검은 잉크처럼 번지는 윤곽선.
"미카, 뒤에!" 내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하루의 길게 늘어진 손가락이 미카의 어깨에 닿는 순간, 모니터가 깜빡이더니 꺼졌다.
다시 켜진 화면에는 텅 빈 캔버스만 남아있었다. 미카도, 하루도 모두 사라졌다. 파일 시스템을 확인해보니 프로젝트 폴더의 모든 파일이 비어있었다. 창 밖으로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주일 후, 나는 사표를 냈다. 그리고 첫 개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목은 '디지털 저승사자'. 주인공은 지워진 캐릭터들의 영혼을 구하는 소녀.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가 그린 적 없는 장면들이 매일 밤 파일에 추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