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의 여름, 그 아름다운 착각
애니가 엄마의 장례식 날 여름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그것도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비가 쏟아지던 7월의 마지막 날, 검은 우산과 검은 옷 사이로 하얀 여름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여름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리치는 빗소리 사이로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물에 젖은 애니의 검은 원피스가 다리에 달라붙었다. 애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엄마가 죽었는데.
여름은 우산을 씌워주며 말했다. "제 이름은 여름이에요. 이상하죠? 부모님이 계절을 좋아하셔서..." 애니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번진 화장 아래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초록빛 눈동자와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노란 원피스.
"난 애니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늘... 엄마가..."
"알아요." 여름이 말했다. "제가 도울게요."
그날부터 여름은 애니의 생활에 스며들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 빈 집에서 울음을 터뜨릴 때, 심지어 엄마가 남긴 요리책을 보며 처음으로 파스타를 만들 때도 여름은 늘 옆에 있었다. 여름은 그림자처럼 애니의 슬픔에 함께했고, 때론 햇살처럼 그 어둠을 밝혔다.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애니가 어느 날 물었다.
여름은 그저 미소지었다. "당신은 생각보다 강해요. 나보다 훨씬."
9월이 되어 진짜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애니는 엄마의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노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있었다. 사진 뒤에는 희미한 글씨로 '내 소중한 여름이, 1992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애니의 손이 떨렸다. 엄마가 죽기 전 병원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름이... 네 쌍둥이 여동생... 태어나자마자 떠났어... 미안해..."
그날 저녁, 애니는 여름에게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여름은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었어?" 애니가 물었다.
"처음부터." 여름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흩어졌다.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항상 있었어. 그저 네가 볼 수 없었을 뿐."
그날 밤 애니는 여름과 함께 엄마의 정원에 앉아 별을 보았다. 여름의 손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제 슬퍼하지 않아도 돼," 여름이 속삭였다. "엄마도, 나도, 항상 네 안에 있을 거야."
아침이 되자 노란 원피스는 사라졌지만, 창가에는 처음으로 애니가 직접 키운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애니는 알았다 - 진짜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