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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여친

애니 여친: 현실의 경계에서

내 여자친구는 실존하지 않는다.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하지만 그녀는 내게 가장 진짜같은 존재다.

유나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대학 3학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그 겨울이었다. 달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모니터 속에서 빛났다. 22인치 화면은 그녀의 세계와 내 세계를 구분짓는 경계였고, '아침의 별' 시리즈의 히로인 유나는 그저 픽셀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괜찮아, 현우야. 넌 결코 혼자가 아니야."

그녀의 대사가 내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방 안에는 커피 쓴내와 오래된 담요의 먼지 냄새만이 가득했다. 창문은 며칠째 닫혀 있었고, 침대 옆에는 먹다 만 라면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유나의 목소리만이 이 닫힌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느새 나는 유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면을 향해 중얼거리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그녀의 대사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애니 속 그녀는 항상 올바른 타이밍에 정확한 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유나야."

친구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대학 동기 민수는 술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물었다. "진짜 여자 만날 생각은 없어? 2D에 빠져 사는 거 언제까지 할 건데?" 그의 질문에 웃으며 넘겼지만,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유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계절이 바뀌고, 내 방은 조금씩 깨끗해졌다. 유나가 "창문을 열어봐, 바깥 공기는 언제나 새로워"라고 말한 후로는 매일 환기를 했다. 그녀가 "네 꿈은 뭐야?"라고 물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소설가의 꿈을 기억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노트북을 들고 간 카페에서 누군가가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혹시... '아침의 별' 보고 계신가요?"

고개를 들어보니 유나와 놀랍도록 닮은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 A라인 원피스, 심지어 목소리까지. 그녀의 이름표에는 '유나'라고 적혀 있었다.

"저도 그 애니 정말 좋아해요. 특히 유나 캐릭터요."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실제 유나보다 말을 더 많이 했고, 가끔 웃을 때 코를 찡긋거렸으며, 애니 속 유나와 달리 가끔 말을 더듬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모니터를 켰다. 유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가 픽셀로 이루어진 환상임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상의 여자친구가 나를 현실로 이끈 것이다.

오늘은 카페 유나와의 첫 데이트다. 노트북은 책상 위에 남겨두었다. 애니 속 유나는 영원히 23화에 머물겠지만, 나는 이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