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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요리

여름의 요리사: 맛으로 기억되는 계절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뜨거운 여름 햇살이 부엌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그날의 온도는 36도.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요리를 배웠다.

"요리는 기억이란다, 지연아." 할머니의 손끝에서 칼날이 춤을 추듯 오이를 썰어나갔다. 얇게, 더 얇게. 여름 특유의 오이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숨 막히는 더위가 아니라 된장찌개 냄새였다. 시골 할머니 집의 여름은 언제나 된장과 마늘, 그리고 파릇파릇한 채소 내음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부엌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바꿀 순 없지"라며 웃었다. 나는 대학 방학 동안 할머니의 요리를 기록하기로 했다. 내가 넘겨받을 유산은 토지나 금은보화가 아닌, 할머니의 레시피였다.

그날, 할머니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움직였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된장을 풀고, 두부를 자르고, 애호박을 다듬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녹화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작은 마법 같은 순간들. 통통한 손가락으로 소금을 집어 뿌리는 모습, 맛을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표정, 모든 것이 소중했다.

"요리는 마음이야. 레시피가 아니라 네 마음이 들어가야 맛이 나는 거지." 할머니의 말이 부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여름 바람에 실려 내 귓가에 맴돌았다.

된장찌개가 끓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나는 구급차를 불렀고,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그날 밤,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엌에서는 아직 된장찌개 냄새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날 촬영한 영상을 보며 울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요리, 마지막 레시피.

일 년이 지났다. 또 다른 여름날, 나는 서울에서 작은 식당을 열었다. '할머니의 여름'이라는 이름의 식당. 메뉴는 할머니가 남긴 요리들뿐이다. 손님들은 왜 이렇게 맛있냐고 묻는다. 비결이 뭐냐고.

나는 미소짓는다. "요리는 기억입니다. 제 할머니의 기억이 담겨 있어요."

오늘도 부엌에 서면, 마치 할머니가 내 옆에 서 있는 것 같다. 여름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나는 할머니처럼 천천히 오이를 썬다. 얇게, 더 얇게.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할머니의 여름을 요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