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의 남편: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사친'이라는 이름이 화면에 반짝였다. 내 아내가 될 여자의 여사친이 아니라, 나의 여사친이었다. 평생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내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누구야?" 도연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눈빛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날카로웠다.
"아니, 그냥 회사 동료." 나는 전화를 무음으로 돌렸다. 열두 번의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민지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축하해, 결혼했다며? 왜 말도 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유리처럼 맑았지만, 균열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러 간 카페에서 민지는 평소와 같이 말을 이어갔지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는 습관이 심해진 것을 알아챘다.
"도연이랑은 어떻게 만났어?" 그녀의 질문에서 향수 냄새가 났다. 우리의 기억 속 주말 산책과 맥주 한 잔의 여유, 서로의 비밀을 나누던 밤들.
"소개팅이야." 간결하게 대답했다. 민지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집에 돌아오자 도연이 물었다. "오늘 누구 만났어?" 그녀는 항상 알고 있었다.
"그냥 옛 친구."
"여자 친구 말고 여자 사람 친구?" 도연의 웃음소리는 따뜻했지만 질문은 차가웠다.
밤에 민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희 집 근처 회사로 이직했어. 가끔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말, 도연이 친정에 간 사이 민지와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옛날처럼 수다를 떨었고,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웃었다. 그 순간, 도연이 서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날 밤, 도연은 짐을 쌌다. "정말 친구였어. 단 한 번도 넘은 적 없어." 내 목소리가 흔들렸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도연이 말했다. "넘지 않은 선이 더 무서운 거야. 그 선을 지키면서 네 마음은 이미 넘어가 있었잖아."
도연이 떠난 후, 민지가 찾아왔다. "이제 어떡할 거야?" 그녀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대답은 복잡했다.
"돌아가야 해." 내가 말했다.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데, 우리가 정말 단순한 친구였을까?"
그 질문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다섯 시간 후, 도연에게 전화했다. "미안해. 널 사랑해."
돌아온 도연은 말했다. "여사친은 문제가 아니야. 네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게 문제지."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이젠 확실해? 누굴 선택한 건지?"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한 빛을 따라가면 다른 빛은 멀어진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경계선이 가장 위험한 함정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