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과 로맨스: 서툰 우리들의 경계선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을 때,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춘 것 같았다. 10년 지기 여사친 유진이 취기에 살짝 홍조를 띤 채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든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일 뿐이라고 수천 번은 되뇌었던 내 마음이 드디어 솔직해질 시간이 온 걸까.
"도훈아, 나 좀 데려다줘." 유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다. 대학교 CC 커플들 사이에서 우리는 10년 동안 '그냥 친구'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나는 그녀의 첫 소개팅을 응원했고, 그녀는 내 실연의 아픔을 함께 술로 달랬다. 서로의 연애사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했던 우리.
택시 안, 그녀의 향수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은은한 라일락 향.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녀의 향. 창밖으로 흐르는 서울의 밤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낭만적으로 보였다.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힐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너 기억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비 오는 날이었어. 지금처럼."
나는 기억했다. 신입생 OT에서 우산을 같이 쓰며 걸었던 그날을.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어깨에 닿았던 그 순간을. 그리고 친구가 되기로 한 우리의 약속을.
"유진아,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 질문은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녀의 집 앞. 비는 더 거세게 내렸고, 나는 그녀를 현관까지 데려다주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우리 사이에 10년 동안 쌓아온 '친구'라는 벽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고마워, 항상 그렇듯이." 그녀가 웃었다. 그 미소가 내 심장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유진아." 내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내일... 밥 먹을래?"
"당연하지. 우리 항상 같이 먹잖아."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데이트로."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10년의 우정이 다음 순간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도훈아,"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 진작 그럴걸 그랬네."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답이 있다는 것을. 여사친과 로맨스 사이, 우리는 마침내 선을 넘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더 이상 흐리지 않았다.